커피를 마실 때마다 달고 시고 쓴 맛으로 대표되는 커피의 향미(Flavor)를 어떻게 세밀하게 표현할까 고민이 됐다. 커피를 마시는 것은 즐거움이지만 이를 어떤 맛인지 정확한 말로 표현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커피 테이스팅(Tasting)에 참여해 봤다.
지난 9일 오후 2시 서울 금천구 서부샛길 커피비평가협회(CCA) 트레이닝센터에 기자를 포함해 7명이 모였다. 몇몇은 이전에 커피 테이스팅에 참여해본 눈치였지만 기자처럼 처음인 경우도 있었다.
박영순 커피비평가협회장은 아로마(Aroma)와 색깔(Color), 산미(Acidity), 향미(Flavor), 여운(Aftertaste), 달콤함(Sweetness), 씀(Bitterness), 균형감(Balance), 결점(Defect)을 카테고리로 하는 평가지를 나누어주었다. 결점을 제외하고 모든 항목은 1~9점 척도다. 여기에 더하여 평가지에는 스위트(Sweet)와 프루티(Fruity) 등 9개의 맛을 확장해 73개로 표시한 플레이버 휠(Flavor Wheel)의 분류에 따른 3가지 특성을 적는 총괄평가(Overall), 커피를 마신 뒤 어떤 색이 생각나고, 어떤 추억이 떠오르는지를 쓰는 항목이 추가되어 있었다.
먼저 2종류의 핸드드립 커피가 제공되었다. 평가 시간은 각 5분. 커피를 마신 뒤 빠르게 각 항목의 점수를 체크해야 하는데 처음부터 난관이었다. 아로마는 커피향을 맡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는데 세부 항목이 꽃(Froral), 과일(Fruit), 시큼한(Sour), 견과류(Nutty), 구운빵(Toast), 쓴(Bitter), 태운(Burnt), 흙(Earth) 등 8개나 됐다.
첫 번째 커피는 견과류와 구운빵 냄새가 나서 7점을, 쓴맛과 태운맛, 흙맛은 거의 나지 않아 2점을, 나머지는 7점을 주었다. 산미·바디·향미 항목은 7점을 주었다.
여운(Aftertaste) 평가 항목이 또다시 발목을 잡았다. Astringency(떫은맛)와 Residual(잔존감)을 어떻게 찾아 평가할지 고민됐다. 단맛이 강해 7점, 쓴맛은 3점, 밸런스는 7점을 주었다.
커피 결점은 없었고, 전체적인 평가는 Strawberry(딸기), Orange(오렌지), Peanuts(견과류)로 적었다.
마음에 떠오르는 색깔은 주황(오렌지), 커피를 마신 뒤 떠오르는 생각은 견과류를 먹었던 것으로 적었다.
두 번째 커피는 첫 번째보다 신맛이 강하다고 느꼈고, 결점이 없었으며 쓴맛과 흙맛이 거의 나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총괄 평가는 자몽, Ashy(재), Sour라고 적었고, 색깔은 Yellow(노란색), 떠오르는 이미지는 낙엽으로 썼다.
두 커피에 대한 평가지 작성을 마친 뒤 박 회장이 세부 항목에 대한 설명을 했다. 박 회장은 “아로마에 비터(Bitter) 등의 평가를 넣는 것에 대한 논란도 있지만 냄새를 맡으면서 경험적으로 느낄 수 있다”며 “메디시널(Medicinal)은 소다나 물파스, 나프탈렌 등의 맛으로 기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사우어(Sour)는 특정한 속성을 은유하기 보다는 부정적인 신맛, 곧 샤프(Sharp·날카로운)함이 어느 정도인지를 체크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여러 지표들의 정의를 올바로 아는 것이 중요했다. 예컨대 너티(Nutty)는 관능적으로 영양성분이 풍성한 씨앗을 구울 때 생성되는 고소함과 단맛, 기름기가 어우러져 기분을 좋게 한다. 토스트(Toast)는 씨앗이 아니라 곡물이 볶일 때를 연상케하는 속성이다. 씨앗이 아니라 식빵이 불에 구워지는 것을 떠올리면 너티와 구별하기 쉽다.
박 회장은 “번트(Bunt)는 탔는지 안 탔는지이며, 일부에서 결점이라고 하는 얼스(Earth)는 결점이 아니다”며 디펙트(Defect)는 묘사하는 것이 아닌 자극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에프터테이스트(Aftertaste)는 맛을 느끼는 것이 긴 것이 아닌 방해꾼이 나오지는 여부인데, 떫은맛인 어스트링전시(Astringency)와 이물감인 레지주얼(Residual)의 유무”라고 덧붙였다.
박 회장의 설명을 듣는 순간 지금까지 알고 있던 에프터테이스터의 상식이 깨졌다. 그간 커피의 에프터테이스터는 단맛이나 신맛의 여운이 긴 것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입을 마르게 하는 떫은맛과 입맛이 개운하지 않는 잔존감 여부를 찾아 평가하는 것이라는 사실에 약간의 창피함도 느꼈다.
첫 번쩨 커피는 코스타리카 카투라(Caturra), 두 번째는 탄지니아 음베야(Mbeya) 버번(Bourbon) 워시드(Washed)였다.
평가지에 기록한 점수가 전문가의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빗나갔지만 박 회장은 “2개는 연습한 것이고 지금부터 4개를 정확히 해보자”고 제안했다.
세 번째와 네 번째 커피가 테스트 잔에 채워졌다. 한번 해봤으니 평가항목 점수를 매기는 것이 조금 쉽게 느껴졌다. 두 종류 모두 첫 번째와 두 번째 것보다 모두 낫다는 느낌이 들었다. 플레이버와 애프터테이스터의 점수를 7~8점으로 높게 매겼다.
세 번째 커피가 네 번째 커피보다 아로마가 조금 부족했지만 상쾌한 느낌이 났고, 네 번째 커피는 구수한 맛이 느껴졌다. 그래서 세 번째 커피 총평을 ‘오렌지, 아몬드, 스트로베리’로 적었고 ‘봄날의 경쾌함’을 느꼈다고 평가했다. 네 번째 커피는 ‘허니(Honey), 오렌지, 너티(견과류)’라고 적고, ‘숭늉’을 떠올렸다.
세 번째 커피는 파나마 게이샤(Geisha) 불칸(Vulkan), 네 번째는 자메이카 블루마운틴(Blue Mountain). 어떤 커피인지 공개되자 확실히 이들 커피가 첫 번째와 두 번째 커피보다 낫다고 느꼈던 기자의 후각과 미각을 믿게 됐다.
박 회장은 이를 “(앞의 것보다) 차분하고 깨끗하다”며 “결이 보인다”고 평가했다. 그는 “델리케이트(delicate·섬세, 우아)하고 굿 배런스(Good Blance)”라고 덧붙였다.
다시 두 종류의 커피가 주어졌다. 다섯 번째 커피의 아로마는 7점, 플레이버 8점 등 우수한 품종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초콜릿, 오렌지, 애플’로 총평을 쓴 뒤 마음속에 ‘고전음악을 감상하는 차분함’이 떠오른다고 썼다.
마지막 커피를 테이스팅하면서 처음으로 강렬한 프로랄(Froral)을 느꼈다. 다른 커피는 꽃 냄새를 찾으려고 후각을 집중했지만 이 커피는 잔에 코를 대자마자 짙은 꽃내음이 솟아 올랐다. 마치 꽃밭에 있는 것처럼 수십종의 꽃들이 기자를 맞이하는 듯 보였다. 맛 또한 단맛과 신맛이 조화를 이루었다. 물로 입안을 닦아 내도 커피의 단맛과 신맛이 길게 느껴질 정도였다. 아로마, 플레이버, 밸런스 등 주요 카테고리의 점수를 8점으로 주었다. 총평에는 ‘허니, 로즈(Rose), 피넛(Penuts)'을 쓰고, 커피를 마시면서 과거에 장미 정원을 걸었던 좋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다섯 번째는 파나마 게이샤(Geisha) 에스메랄다(Esmeralda) 워시드(Wsshed), 여섯 번째는 파나마 게이샤(Geisha) 에스메랄다(Esmeralda) 내추럴(Natural). 세계적인 커피 품평가인 돈 홀리(Don Holly)가 2006년 베스트 오브 파나마 대회에서 우승한 에스메랄다의 게이샤 커피를 맛보고는 “에스메랄다의 특별한 커피에서 나는 신을 만났다”고 극찬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박 회장은 “입안에서 풍선이 커지는 느낌이고, 피니쉬(finish)의 길이가 다르다”며 “새콤달콤하며 잼라이크(jamlike)도 나온다”고 말했다.
이날 테이스팅은 3시간 만에 끝났다. 세상에 좋은 커피는 많다는 느낌을 받았다. 박 회장은 “커피를 마실 때 항상 산지의 농장까지 확인해야 한다”며 “커피를 평가할 때 선입관을 갖지 말고 ‘이 커피는 너무 좋다’는 등의 말을 아껴야한다”고 말했다.
신진호 커피비평가협회(CCA) 커피테이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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