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플랫폼에서 방영된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2021년 9월 17일부터 방송된 이 드라마는 한 달 동안 1억1000만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했으며, 넷플리스가 정식으로 서비스되는 모든 국가에서 1위를 달성하는 등 최고의 시리즈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오징어 게임은 456억원의 상금이 걸린 의문의 서바이벌에 참가한 사람들이 총 6개의 게임을 통과하고 최후의 승자가 되기 위한 죽음의 게임에 도전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게임의 각 단계에서 탈락한 참가자들은 곧바로 제거(죽음)되고 새로운 게임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직품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놀이는 전 세계적으로 따라하기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촬영한 영상이 큰 인기를 끌고, 달고나 관련 상품들도 불티나게 팔려 나가고 있다. 프랑스 파리에서는 오징어 게임 체험관에 서로 먼저 입장하기 위해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K-Pop과 영화 기생충에 이은 드라마 오징어 게임 열풍으로 인해 세계는 한국 문화의 약진을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그동안 서구를 중심으로 형성된 세계 주류 문화에 한국이 정식으로 편입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외신들은 평가가하고 있다. 가히 한국 문화(K-Culture)의 전성시대라 불릴만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해외 언론들은 차츰 오징어 게임과 같은 내용의 드라마가 나오게 된 한국의 사회·경제적인 배경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영국의 BBC뉴스는 오징어 게임에 나타난 한국 사회가 직면한 문제에 대해 ▲여성혐오 ▲탈북자의 역경 ▲빈곤 ▲이주 노동자 문제 ▲정경 유착 및 비리 ▲한중 관계 등 6가지를 언급하고 있다.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Le Monde)의 지적은 조금 더 구체적이다. 상금 456억원을 받기 위해 456명이 목숨을 걸고 펼치는 생존 게임은 코로나19 위기가 낳은 한국 사회의 잔혹한 현실을 정확하게 반영한다고 르몽드는 분석한다. 또한 르몽드는 오징어 게임의 감독인 황동혁이 2008년 시리즈를 처음 기획하고 투자자를 설득하는 10여년의 기간 동안 한국 사회는 드라마처럼 잔혹한 세상, 승자 독식의 불평등한 구조가 더 악화되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오징어 게임을 통해 나타난 한국 사회(혹은 경제)의 문제점에 대해 해외 언론은 공통적으로 가계 부채 문제와 소득 불평등, 그리고 빈곤 문제에 주목한다. 그런데 외신이 언급하지 않고, 오징어 게임과 같은 드라마가 흥행에 성공하지 않아도 가계 부채 문제는 우리 경제의 뇌관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취약한 사회 안전망에 노출된 한계 계층의 빈곤 문제도 좀처럼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특히 부의 세습, 가난의 세습으로 대표되는 ‘계층 간 불평등’, 2030세대가 소외되는 ‘세대 간 불평등’의 고착화 경향은 현재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모든 갈등의 출발점이 되고 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오징어 게임은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8년에 기획되었다. 이 시기에 연애·결혼·출산의 세 가지를 포기하거나 미루는 청년 세대를 뜻하는 ‘삼포세대’가 처음 등장했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열정 페이’와 취업난으로 고통 받는 청년층이 한국을 자조적으로 일컫는 ‘헬조선’이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2030 세대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탄생한 문재인 정부에서도 사정은 결코 나아지지 않고 있다. 치솟는 부동산 가격으로 인해 미래를 잃은 청년들이 빚을 내어 주식과 가상화폐 등에 투자하는 ‘빚투족’, ‘영끌족’이라는 신조어가 나왔다.
정부가 바뀔 때 마다 청년 세대를 위한 장밋빛 정책을 발표하고 있지만 상황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징어 게임이 2008년에 나왔다면 지금보다 덜 잔혹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찬가지로 한국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10년 후 오징어 게임과 같은 드라마는 그 내용이 훨씬 더 끔찍해 질 것이다. 오징어 게임의 성공이 마냥 반갑지 만은 않은 이유다.
이원호 비즈빅데이터연구소장(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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