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팬데믹으로 잠잠했던 다자간 자유무역협정(FTA) 관련 이슈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정부는 지난 1일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비준 동의안을 국회 외교통상위원회에 제출해 놓고 있다. 또한 그동안 검토 단계에 머물렀던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 가입도 서두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RCEP은 아세안 10개국과 한·중·일, 호주 뉴질랜드 등 15개국이 참여하는 메가FTA로, 지난 2020년 11월15일 각국에서 RCEP에 서명함으로써 체결되었다. 형식적으로 아세안 10개국이 주도하는 것처럼 되어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중국이 중심에 서있다. 협상 과정에서 인도가 빠지기는 했지만, 현재 각국의 비준만을 남겨두고 있어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반면 CPTPP 가입을 둘러싼 문제는 조금 복잡하다. CPTPP는 미국의 오바마 정부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아시아-태평양 주요국을 회원으로 출발한 TPP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하지만 2017년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이 자국의 일자리 보호를 이유로 TPP 탈퇴를 선언하면서, 일본이 이를 이어받아 나머지 11개국과 CPTPP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출발하게 된 경제협의체다.
CPTPP는 인구 약 7억명, 전 세계 GDP의 12.9%, 교역량의 14.9%을 차지하는 거대한 시장이다. 주요 내용은 ▲농수산물과 공산품 역내 관세 철폐 ▲금융·외국인 투자 규제 완화 ▲전자상거래 등 역내 온라인 거래 활성화 ▲기업인 이동의 자유화 등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초기 결성을 주도한 일본이 내년 1월 까지 의장국을 맡고 있다. 아시아 국가 중심의 RCEP과 달리 CPTPP는 미국을 제외한 환태평양 주요 국가를 포함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CPTPP 출범 초기 소극적으로 대응하게 된 데는 경제적인 이유보다는 정치적인 문제가 우선시되었기 때문이다. CPTPP의 전신인 TPP가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려는 목적이 강했던 만큼 우리의 최대 교역국인 중국의 눈치를 본 것은 사실이다. 이후 일본이 주도한 CPTPP에서도 갈수록 악화되는 한·일 관계가 발목을 잡았다. 물론 경제적인 측면에서 CPTPP의 중요성을 간과한 면도 있다. CPTPP에 속한 11개국 중에서 일본과 멕시코를 제외한 나머지 9개국과 이미 FTA를 체결하고 있었기 때문에 RCEP 이외의 다자간 FTA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최근 들어 국제 통상 환경이 변화하고 있다. 미국에서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미국의 CPTPP 재가입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여기에 더해 EU에서 탈퇴한 영국과 중국, 대만이 가입 의사를 밝혀오고 있다. 그동안 중국을 의식해 소극적인 태도를 취했던 우리로서는 가입 신청의 명분에서 자유로워졌다. 이제 서두르지 않으면 우리나라만 고립될 수 있다는 위기감마저 드는 상황이다.
이번에 정부가 CPTPP 가입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로 결정한 것은 환영할만하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불안한 글로벌 공급망과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갈수록 중요해지는 디지털 통상 분야를 고려한다면 반드시 추진해야할 과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3년 가입을 검토한 이후 8년 동안 차일피일 미루어 왔던 점은 다소 아쉬운 대목이다. 특히 미국과 중국을 둘러싼 통상 환경에 변화가 생기자 우리도 움직이기 시작한 모습은 씁쓸하기만 하다.
유명희 외교부 경제통상대사는 이번 CPTPP 가입과 관련한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한국은 아시아 태평양 지역 내 손꼽히는 무역 강국이자 반도체와 같은 핵심 품목의 제조 기술과 설비를 동시에 가진 국가”라며 ‘당당한 협상 태도’를 주문했다. 하지만 그동안 현실은 정반대로 흘러왔다. 강대국의 눈치 보기에 급급한 정치·외교 논리에 함몰되어 있었다. 국제 사회에서 높아진 경제 위상만큼 앞으로는 당당한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할 것이다.
이원호 비즈빅데이터연구소장(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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