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세계는 총성없는 전쟁이 한창이다. 미국과 유럽, 일본 등 선진국들은 전략산업 강화를 위해 글로벌 공급망(Global Value Chain) 구축에 사활을 걸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2019년 일본의 반도체 3개 핵심 소재 금수 조치와 지난해 요소수 대란을 겪으면서 안정적 GVC 구축이 얼마나 절실한지 몸소 깨닫고 있다.
올해는 미국 중간선거(11월)와 중국 공산당 100주년 대회(10~11월) 등 G2의 주요 정치 이벤트를 앞두고, 양국 간 패권전쟁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미국은 중국 견제를 위해 대중 우위 확보와 공급망 디커플링(Decoupling) 등 아시아 네트워크 강화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지난해 말 중국 신장지역산 수입 금지를 골자로 하는 위구르족 강제노역 방지법 입법, 베이징동계올림픽 외교적 보이콧 등 대중 압박을 강화하더니 중국 33개 기관을 수출통제리스트에 포함시켰다. 미국은 한걸음 더 나아가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를 핵심 정책으로 내세우며 아시아 국가들과 연대와 공급망 안정화에 집중하고 있다.
중국은 이에 맞서 한국과 일본으로부터 주요 소재·부품·장비를 수입하던 기존 상호보완적 경제·무역구조에서 탈피해 중국 중심의 역내 공급망(RVC) 구축을 가속화하고 있다.
EU도 회원국 이익을 위해 전략산업 공급망 독립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반도체와 배터리, 전기차 등 전략·고부가가치 산업의 자체 공급망 구축을 골자로 하는 개방형 전략적 자율성(Open Strategic Economy)을 추진하며, 제약·의료 등 핵심 분야 보호를 위해 외국인투자심사를 강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도 전략물자의 공급망 강화를 주요 목표로 하는 경제안보실 신설, 원전 재가동 정책 추진 등 주요 경제정책의 변화가 예상된다.
이런 상황에서 산업통상자원부가 글로벌 공급망(GVC) 분석센터를 출범시키고 글로벌 공급망 이슈에 대한 정부부처, 기업 등으로부터 수집된 주요 산업 관련 국내·외 동향을 심층 분석하는 한편 공급망 관련 이상 징후 발견 시 이를 신속히 전파하고 대응조치를 제언하는 등 국가 조기경보시스템(EWS) 운용을 지원하기로 한 것은 시의 적절한 조치라고 본다.
최근의 공급망 관련 이슈들은 민·관 단독으로는 대응하기 어려운 형태로 진행되고 있어 효율적인 대응을 위해서는 정부와 민간의 긴밀한 네트워크 구축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지속되는 미·중 갈등 속에서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나라로서는 안정적인 글로벌 공급망 구축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중국과 일본 위주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장을 창출해야 하는 이유다. 아세안이 대안이 될 수 있다. 아세안은 중국 의존도가 높았던 기존 GVC의 재구축이 활발한 가운데, 가전제품 등 글로벌 기업의 아세안으로의 생산기지 이전이 확대되는 추세다. 특히 올해 1월부터 세계 최대 규모의 경제협정인 RCEP이 본격 발효되어, 아세안과 교역규모가 확대될 전망이다. 뿐만 아니라 인구 구조가 젊고 모바일 보급률이 높은 아세안은 코로나 이후 소비시장의 디지털화가 급속히 진행되어 잠재력이 크다.
G2의 패권경쟁이 심화되면서 첨단 소재·부품·장비 산업 생태계가 GVC라는 협력에서 각자도생의 길로 바뀌고 있다. 이젠 국제 비즈니스를 할 때 기술력과 가격 경쟁을 갖춘 상품을 찾기보다는 먼저 국가 안보를 생각해야하는 시대가 왔다. 이런 위기를 민관이 똘똘 뭉쳐 극복함으로써 한국 경제의 재도약을 기대해 본다.
김보수 중견기업연구원 부원장(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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